벙어리 예수 | 서진구목사 | 2019-04-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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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이사야53:7-9절 개역개정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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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구 2019.4.13 09:25
"벙어리 예수" 요약
세상은 가만히 있는 자를 없신여기고 침묵하는 자를 바보로 여깁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소리를 내기에 여염 없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53:7-9속에 나오는 고난 받는 종인 메시야는 시종일관 침묵합니다. 인간이 당할 수 없는 곤욕을 당해도 잠잠하고, 심지어 죽기 위해 끌려가면서도 잠잠합니다. 침묵하시는 모습을 이사야 선지자는 도수장에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깍는 자 앞에서 잠잠을 양으로 비유합니다.
고난 받는 종인 예수님이 벙어리처럼 침묵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힘이 없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고통을 가해도 고통을 모르는 몸이기 때문일까요?
예수님은 힘이 없는 분이 아닙니다. 말할 줄 모르거나 또 할 말이 없기 때문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부당하게 대하는 그들을 멸하기 위해서 셀 수 없는 천군천사들을 동원하셔서 그들을 멸하실 수도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이 침묵으로 고통을 감내하신 이유는
예수님은 인생을 사랑하사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하지 않아도 될 고난을 당하시되 침묵으로 묵묵히 그 모든 아픔을 감내하셨습니다.
주님이 침묵속에 당하신 고난 때문에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침묵은 죄인을 사랑하시는 성부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죄인을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침묵은 피 흘림의 고난을 통해서만 인류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수 있는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당할 때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예수님처럼 벙어리가 되어 침묵해야 할까요? 아니면 억울함을 호소하며 싸워야 할까요?
예수님을 생각함으로 나의 침묵이 다른 사람들의 구원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리스도를 따라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나의 침묵으로 남편이 구원 받을 수 있다면, 입이 천개라도 침묵해야 합니다. 벙어리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말 할줄 몰라서가 아닙니다. 나의 침묵으로 자식을 살릴 수 있다면 그리해야 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나님을 뜻을 이루기 위해서 침묵해야 한다면 침묵하십시오.
사랑은 침묵입니다. 침묵은 힘없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침묵은 짓밟혀도 힘이 없는 민초들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침묵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진 상대방의 구원을 이루기 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교회 안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즉, 입으로 떠들고 행하지 않는 사람들과 말없이 침묵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예수의 침묵은 속죄의 완성을 위한 거룩한 침묵이었습니다. 우리도 할 말이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도 많습니다.
우리는 침묵을 깨고 내가 하고 싶은 말 다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순간 나는 시원할 수 있겠지만 결국은 다 죽게 됩니다.
믿지 않는 남편과 살아오신 아내 된 여러분! 주님은 여러분의 속앓이를 알고 계십니다. 아직 철들지 않는 자녀 때문에 입술을 깨물며 침묵하고 계신 부모 여러분! 주님은 여러분의 아픔을 다 알고 계십니다.
조용히 침묵하고 지켜봐 주시는 것이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입니다.
반대로 아직 성숙하지 못한 부모님으로 인하여 아픔을 경험하는 자녀된 여러분! 저도 한때 지금은 힘이 없어 침묵하지만 언제가 힘이 세지면 보복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침묵하고 싶어서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침묵하는 경우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침묵한다면 우리의 침묵을 통하여 많은 영혼들이 살아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실 말씀도 얼마나 많으실까요? 그런데도 참으시고 오래 참으시고, 알면서도 모른척 해주시고, 하루를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같이 참으시니까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기간입니다. 침묵의 영성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침묵속에 하나님의 행하심을 목도하는 귀한 시간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