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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대장부되신 하나님 서진구목사 2019-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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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jdoore.org/bbs/bbsView/13/5546302

[성경본문] 사무엘상4:9-11절 개역개정

9.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되지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10. 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11.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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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서진구 2019.3.2 11:33

    여호와의 법궤의 위력을 익히 알고 있었던 블레셋 군대는 어차피 하나님의 진노로 죽으나 싸우다 죽으나 마찬가지였기에 죽음을 각오하고 전장으로 나갑니다. 그러나 아무도 승리를 장담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싸움은 블레셋의 승리로 싱겁게 끝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궤로 말미암아 자신들이 대장부인줄 알았습니다.
    엘리의 두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자신들이 천하에 대장부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대장부로 나섰던 홉니와 비느하스는 졸장부가 되어 도망치다가 칼에 맞아 죽고, 땅을 진동시키는 환호성으로 대장부의 기세로 나아갔던 이스라엘 군은 3만명이 죽임을 당하고 여호와의 궤조차 빼앗기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패할지언정 하나님의 언약궤를 뺏겨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블레셋 사람들은 지금까지 여호와와 같은 신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신이야 말로 장수중에 장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기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자신을 의지하는 백성들을 구원하기는커녕 자신조차 지키지 못한 신이라면 누가 이런 무능한 신을 사랑하겠으며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대장부가 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대장부이셔야 합니다. 인간은 언제나 강한 신을 좋아합니다. 인생의 수많은 고난으로부터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들을 지켜줄 수 있는 강한 신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된 것도 하나님은 신들 위에 뛰어난 신이시며, 예수 그리스도가 왕중왕이시며, 모든 주들 중의 주인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무능한 신처럼 블레셋 군대의 포로가 되어 짐작 취급을 당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약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포로가 되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포로가 되실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이스라엘의 희생을 막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살리시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스스로 포로가 되신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은 군은 블레셋에 의해서 전멸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적진에 넘겨주고 이스라엘을 건져주시는 대장부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보다 소중한 아들까지 버리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사람들은 사랑하되 언제나 이기적인 사랑을 합니다. 자신에게 유익이 있으면 사랑하고 자신에게 불리하면 언제든지 버리는 이기적인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포로가 되어 조롱과 비웃음거리가 되실지라도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시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합니다.
    이기적인 사랑은 절대로 자신도 상대방도 행복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자신을 내어주는 대장부의 사랑만이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는 대장부입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으면 누구든지 대장부의 사랑을 하는 자로 변화됩니다. 대장부되신 예수님은 일생을 자기밖에 모르는 졸장부와 같은 우리를 대장부로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한때 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이득만을 좇는 졸장부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대장부의 사랑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은 내가 죽을지언정 나라를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시대를 살릴 수 있다면 이 한 몸 기꺼이 드리겠다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세상은 이런 대장부들을 두려워합니다. 이들은 순교의 순간이 올 때도 대장부의 사랑으로 순교의 고지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이런 대장부의 사랑을 위해서 우리는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에는 2가지 기도가 있습니다.
    인격적인 기도=대장부의 기도 = 고수의 기도가 있습니다.
    반면에 사역적인 기도 = 졸장부의 기도 = 하수의 기도도 있습니다.
    인격적인 기도는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오늘도 함께 동행하시는 예수님을 알게 해달라고, 그 사랑을 깨닫게 해달라고 드리는 기도입니다. 사역적인 기도는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사역적인 기도보다 인격적인 기도를 더 원하십니다. 인격적인 기도가 사역적인 기도보다 우선합니다. 물론 사역기도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역적인 기도는 나를 편안한 삶은 보장하지만 대장부의 인생을 살아가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나를 대장부의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대장부되신 예수님 자신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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